H

H Hour

Frank Gehry : The Architect of the Week

2012-05-03

Frank Gehry, Image from lolkout.org

 

 

아마, 이름은 익숙하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이 건물을 보신다면, 아! 하고 무릎을 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디자이너는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 입니다.

192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프랭크 게리는 유태인 가정에서 자라난 영향때문인지 매우 창의성이 높은 아이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철물점에서 매주 토요일 시간을 보내면서 그곳에 있는 물건을 가지고 놀았다고 합니다. 이는 후에 그의 재료 선택 (철판, 철조망, 채색되지 않은 합판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영향으로 드로잉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1947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게리는 배달 트럭의 운전 일을 하며 로스앤젤레스 시티 칼리지에서 공부를 합니다. 그후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의 건축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이 시기를 회상하면서 프랭크 게리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는 LA의 트럭 운전사이면서 시립대학을 다니는 학생이였지요. 중간 중간 라디오 아나운서를 하긴 했지만 그렇게 잘하진 못했습니다. 그 시절 화학 공학을 공부하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제가 잘 하는 분야가 아니었고 좋아하는 일도 물론 아니었죠. 그래서 늘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나를 재미나게 하는 것은 뭘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곧 그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미술관을 가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을 보는 것,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저를 콘서트장과 미술관에 데려갔기 때문이었죠. 그런 이유로 저는 건축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USC 를 졸업한 게리는 건축일이 아닌 다양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하바드 디자인 대학원(Harvard Graduate School of Design)에서 도시 계획을 1년 간 공부하기도 하였습니다. (학위를 받지는 않았음)

하바드에서 다시 LA로 돌아온 게리는 그루엔 어소시에이츠(Gruen Associates)와 같은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했지만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파리에 있는 프랑스 건축가 앙드레 레몽데(Andre Remondet)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근대 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에 대한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1962년 프랑스에서 돌아온 게리는 자신의 이름을 딴 게리 어소시에이츠(Gehry Associates)라는 회사를 차립니다. 그의 나이 33살이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와 바우하우스 등에 영향을 받은 프랭크 게리는 인터네셔날 스타일(국제양식이라고도 하며 장식성의 제거, 커다란 유리면, 평지붕과 기능주의의 확장 등이 특징)의 건축물을 설계하지만 점점 아방가르드 스타일(급진적인 스타일)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 즈음 그는 물결모양으로 구부러진 판지를 이용한 가구를 만들어 명성을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축에서는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지요. (이때부터 물고기를 모티프로 한 조형물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후에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그가 만든 조형물, 악세사리 등에 물고기와 물결을 연상시키는 모양이 많이 등장합니다.)

 

Easy Edges Series by Frank Gehry, 1972

 

게리는 그의 집을 개조하면서 건축의 새로운 그리고 진보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려 합니다.(일이 없어 자신의 집을 개조했다는 뒷이야기도 있습니다만…) 그는 보통 미국의 집에서 사용되지 않는 재료들(철조망과 물결모양의 알루미늄, 그리고 마감되지 않은 합판 등)을 대담하게 표현합니다. 구조적인 재료들을 속이 아닌 외부로 표현하면서 말이죠. 이 집은 주민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하였지만 이로 인해 조금씩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후 작업 의뢰가 점점 들어오기 시작하지요.

 

Gehry’s House, Image from weburbanist.com

 

공공 프로젝트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로스엔젤레스 프랜스 하워드 골드윈 도서관(1985, Frances Howard Goldwyn / Hollywood Regional Library)과 캘리포니아 우주항공 박물관(1984, California Aerospace Museum), 로욜라대학교 법과대학(1978, Loyola University Law School) 등의 작품이 등장하게 됩니다.

 


Frances Howard Goldwyn Regional Branch 1984 by architect Frank Gehry, images from you-are-here.com

 

California Aerospace Museum, Image from windoweb.it

 

Loyola Law School, 1984, Image from all-art.org


이런 일련의 작품들은 그의 이름을 조금씩 알릴 수 있게 해주는데요. 이후 설계한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1989, Vitra Design Museum)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세계 건축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합니다. 그의 작품은 당시 늘 ‘심각하기만 했던’ 세계 건축씬에 엉뚱하고 재미난 건축을 보여줍니다. 기본적인 기하학 도형을 이용해 전례 없는 복잡함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곧 그의 건축은 해체주의(Deconstructivism – 기존 건축 개념의 균형성, 중심성, 통일성, 용도, 기능, 중력 등의 요소를 해체하는 스타일)라는 사조로 규정되게 됩니다.

 

Vitra Design Museum, 1989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은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세계적인 평판을 얻게 되지만 여전히 건축계에서만 알려진 이름이였습니다.

 

1989년 프랭크 게리는 로스엔젤레스에 지을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설계를 의뢰받아 급진적인 스타일의 디자인을 완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금 부족과 정치적인 이유로 건설이 계속해서 지연되지요. 그 사이 그는 미네소타 대학의 웨이스만 아트 뮤지엄(1993, The Weisman Art Museum at the University of Minnesota)를 설계하고 되고 이 작품은 그에게 있어 매우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는데 바로 이 작품부터 스테이레스 스틸(이후엔 티타늄)을 사용한 해체주의적 조형미가 뚜렷하게 보이게 됩니다.

 

 

Walt Disney Concert Hall, 1993-2003

 

The Weisman Art Museum at the University of Minnesota, image from flickr

 

그가 공들였던 프로젝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던 사이 그는 세계 여러 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체코 프라하에 설계한 춤추는 집(1995, Dancing House)이 그 중 하나 였습니다. 두 사람이 끌어앉고 춤을 추는 형상을 닮아 매우 유명해진 건축물이지요.

 

Dancing House, Prague, 1996

 

또한 이 시기에 디자인을 하였지만 실현되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서울의 미술관 설계안 이었습니다. 삼성으로부터 의뢰 받았던 이 설계안은 너무 비싼 설계비 때문에 ‘완전히’ 거절당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삼성은 세 명의 거장 건축가인 렘 쿨하스, 마리오 보타, 장 누벨에게 의뢰해 현재의 리움 미술관을 지었지만 그 때 만약 프랑크 게리가 서울에 미술관을 지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시기적으로 구겐하임 미술관보다 먼저였으며 빌바오 구겐하임의 컨셉과 같은 컨셉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97년 프랭크 게리라는 이름이 건축계에서만이 아닌 모든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는데, 그 계기가 바로 스페인 빌바오의 새로운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완공이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의뢰 받고 그렸던 단순한 프리스타일 스케치가 컴퓨터 기술을 거치면서 매우 복잡한 형태의 기이한 건축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1991년 바스크 정부는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에게 빌바오에 미술관 건설을 제안합니다. 이에 재단은 프랭크 게리를 건축가로 지정하고 아주 대담하고 혁신적인 설계를 부탁합니다. 비록 계획했던 예산의 14배에 달하는 비용이 들었지만 바스크 정부의 매우 적극적인 노력으로 완공되게 되었습니다. 1997년 문을 연 이후 이 미술관은 20세기의 마스터피스로 칭송 받으면서 단숨에 스페인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가 됩니다. 이 미술관 덕분에 빌바오는 쇠락하는 공업도시에서 한해 10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도시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빌바오 효과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며 현재는 파리 루브르,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연회원이 많은 미술관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Guggenheim Museum, image from edgeoftheplank.com

 

Gehry Tower, Hanover, 2001

 

Richard B. Fisher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2003

 

구겐하임 미술관의 성공에 잠시 잊혀졌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아주 오랜 기다림 끝에 2004년 완공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로스엔젤레스의 랜드마크로 서게 됩니다. 하지만 설계한 시점과 완공된 시점의 차이 때문에 구겐하임에서 이미 선보였던 비슷한 디자인은 대중들이 그에게 걸었던 많은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하였습니다. (프렌치 후라이를 담는 종이와 닮았다고 놀림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건축은 대중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으며 이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하는 뮤지션 뿐만 아니라 공연을 보는 관객들로 부터도 뛰어난 디자인이라고 칭찬을 받습니다.

 

Walt Disney Concert Hall, 2003, Image from edgeoftheplank.com

 

The EMP Musuem (EMP|SFM, Experience Music Project and Science Fiction Musuem and Hall of Fame), 2000

 

Marqués de Riscal Vineyard Hotel, 2006

 

이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프랭크 게리는 건축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자신의 창의성을 보여주는데요.

비보로와 보드카(Wyborowa Vodka) 병이나 파슬(Fossil)의 손목시계, 티파니(Tiffany & Co.)의 쥬얼리, 2006년 하키 월드컵 트로피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이름을 알립니다. 영화감독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은 그와 그의 작품을 소재로한 영화를 만들기도 하죠.

 

Wyborowa Vodka Bottle & Package by Frank Gehry, image from citronette.wordpress.com

 

Fossil Watch by Frank Gehry, image from grooveeffect.com

 

Tiffany & Co. Jewelry by Frank Gehry, Image from tiffany.com

 

늘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면서 스타 아키텍트(Starchitect)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이 건축가는 오래전 사실 애플의 광고에도 등장한 할 수도 있었지만 애플의 디자인 철학과 맞지 않아 거절한 일화도 있다고 합니다. 심슨 애니메이션에서 그 자신으로 출연되기도 하였으며 레이디 가가를 위한 모자를 직접 만들기도 하였죠.

 

Frank Gehry on The Simpsons

 

Hat For Lady Gaga, 2009, image from curbed.com

 

이처럼 건축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프랭크 게리는 그의 디자인이 이제 조금은 식상하게 느껴지더라도 건축을 단순히 기능적이고 상업적인 오브젝트가 아닌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현대 건축계에 아주 큰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만약 상업적으로만 접근하였다면 프랭크 게리의 건축은 이렇게 많이 지어지지 못하였을지 모릅니다. 사실 게리는 종종 예산을 초과했지요. 하지만 그에게 있는 “특별한” 능력이 그의 상상을 실현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참신함’이란 덧없는 추구입니다. 내가 이미 시도한 것을 보면, 직관적으로 그것을 피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선입견 없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털실을 가지고 노는 새끼 고양이와 같습니다. 실뭉치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그것을 바라만 보는 사람은 기회주의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놀기 시작합니다. 무궁무진한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혁신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우발적인 사건을 인정하고, 거기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한 단계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토대로 한 발짝 더 진전시킵니다. 또 다음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다음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봅니다. 계속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대해 신뢰를 갖는 것입니다. 나는 항상 그래 왔고, 아무튼 언제나 그게 통했습니다.” (출처)

 

게리는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 건축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Lou Ruvo Center for Brain Health, Las Vegas, 2010, image from dezeen.com

 

New York By Gehry, 2011

 

Opus Hong Kong, 2012, Images from inhabitat.com

 

 

 

참고자료>>

http://en.wikipedia.org/wiki/Frank_gehry

http://www.achievement.org/autodoc/page/geh0bio-1


http://www.windoweb.it/guida/scienze/biografia_frank_gehry.htm

http://www.dezeen.com/2010/06/17/lou-ruvo-center-for-brain-health-by-frank-gehry/

http://www.designboom.com/weblog/cat/9/view/7688/frank-o-gehry-since-1997-exhibition.html

H Hour

행복한 습관, 즐거운 중독, 내 일상의 하이라이트, 디자인

Search